방송 중 가슴 노출은 작전?

최근 지상파방송과 케이블방송에서 여가수들이 격렬한 춤을 추다가 자칫 가슴이 노출될 뻔했다는 스포츠신문의 기사가 줄을 잇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네티즌이 적지 않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슴 노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연예인 당사자와 방송사, 그리고 스포츠신문이 '성'을 상품으로 내세워 인기와 시청률, 신문 판매율을 동시에 올리는 작전에 손을 맞잡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아이디가 'subinfafa'인 네티즌은 "가슴 한 번 노출해서 뜨니깐 신인들이 너무 많이 따라하는 것 같네요"라며 "제목을 가슴노출작전으로 해야 맞을 듯하다"고 비판했다. 아이디가 'tndidfi'인 네티즌은 "위험을 예견하고 일부러 입힌 옷이겠다"고 했고, 'pomoso'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노래가 안 되니 몸으로 때우려고 하느냐"며 비아냥거렸다. 심지어 아이디 'autumn'인 네티즌은 "전체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나오는 여가수들 보면 합법적인 인증 성인에로물 같다"고까지 꼬집었다.

실제로 최근 2~3개월 사이 본방송 중이나 콘서트에서 여가수들의 지나친 노출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빈번한 내용이 가슴 노출이었고, 팬티 노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안무와 관련한 시비도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팬티 노출-성행위 연상 시비도

무대공연 중 가슴 노출 소동을 가장 먼저 일으킨 연예인은 하지원이다. 하지원은 지난 5월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 출연해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역전에 산다]의 주제가를 격렬한 춤과 함께 부르다가 상의 대신 입은 얇은 수영복 아랫단이 찢어져 자칫 가슴이 노출될 뻔했다. 이어 8월 중순 더에스의 이윤미가 음악전문 케이블TV인 KMTV [쇼 뮤직탱크]를 녹화하던 중 어깨끈이 없는 상의가 흘러내려 한쪽 가슴이 노출된 것을 모른 채 1분 가량 춤을 추었다는 기사가 나왔고, 9월 초에는 이효리가 SBS [생방송 인기가요] 리허설에서 솔로 데뷔앨범 10minutes를 부르다 가슴이 노출될 뻔했다는 기사가 스포츠신문 톱기사로 등장했다. 가장 최근엔 베이비복스의 김이지가 [쇼 뮤직탱크] 녹화 중 상의 끈이 풀어지면서 가슴 일부를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특히 이효리의 경우 가슴 성형 논란, 효리 왕가슴 e카페 열풍 등 가슴과 관련한 선정적 기사가 대서특필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최근 여가수들의 잇단 가슴 노출 소동에 고의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부는 노출 패션과 연예인의 누드집 열풍, 그리고 여기에 음반 시장의 침체가 맞물리면서 빚어진 일종의 해프닝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가요계를 관통하고 있는 건 '섹시 코드'로, 음반 시장 불황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여가수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움직임이 많은 춤을 추다가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MBC [음악캠프]의 권석 PD는 "김건모-신승훈의 전성기 때만 해도 웬만한 가수의 판이 1백만 장을 넘기기 쉬웠던 데 반해 요즘은 잘 나가야 10만 장"이라며 "음반 제작에 투자해봤자 본전 뽑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섹시 코드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 짧은 기간 내에 홍보 효과는 톡톡히 누리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수의 이름이 알려지면 음반 판매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각종 행사나 밤무대로부터의 손짓은 일단 많아지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항의가 격렬하자 MBC는 "리허설 때와 다른 춤을 추어 일어난 돌발적인 일"이라고 해명한 데 이어 채소연에 경고조치를 취했다. 이와 관련 SBS [생방송 인기가요]는 채소연으로부터 '방송 중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후 방송 출연을 허용했다.

채소연은 이날 지상파방송 출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케이블방송용으로 준비한 안무를 추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많은 가수가 안무와 뮤직비디오를 케이블방송용과 지상파방송용으로 구분해 준비하는데, 케이블방송용은 지상파방송용보다 훨씬 더 노출이 심하고 에로틱하다.

섹스어필 가수 범람 우려 목소리

채소연의 매니저인 전성열씨는 "채소연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새로운 곡 〈반전〉을 발표하기 직전 효리-채연-더에스 등이 섹시코드로 나왔다"며 "웬만한 안무로 그들을 앞서기 어려우므로 더 노골적인 섹스어필 안무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씁쓸한 점은 어찌됐건 채소연의 이같은 방송 사고와 반라의 앨범재킷 사진, SBS로부터 뮤직비디오 방영 불가 판정, 한 스포츠지와 인터뷰에선 상반신 누드 사진을 찍었다는 기사 등이 연달아 나오면서 채소연의 음반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요즘 잘나가는 가수의 음반이래야 하루 200장 판매되는 수준인 데 반해 채소연은 하루 800~1,000장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음반 판매뿐 아니라 밤무대에 출연해달라는 요청도 많다.

노래 실력보다 외모와 섹스어필을 내세운 가수가 가요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장 제작진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를 뿐이라는 주장이다. SBS [생방송 인기가요]의 성영준 PD는 "소비자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제작진은 움직이는 것"이라며 "비주얼 시대에 무조건 노래를 잘 해야 가수로 인정한다는 청교도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MBC [음악캠프]의 권석 PD도 "가요도 패션을 따라야 한다"며 "지금은 노래를 잘하는 가수 못지않게 노래 실력은 다소 떨어져도 춤을 잘 추는 가수가 요구되는 시기"라고 주장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방송에서 배꼽을 드러내는 의상을 입거나 머리카락 염색, 귀걸이 착용이 전혀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예사로운 일이 되었듯 선정성 시비도 현 시점에서의 정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분한 가요계의 '섹시 코드'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섹시 코드가 주류를 이루는 한, 여성의 신체 부위 중 섹스 어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가슴 부위 노출과 강조 역시 지속될 것이다. 가수가 되려면 얼굴과 가슴 성형수술 먼저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